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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 파울 루벤스 작품 랜선 전시회
분야 : 문화·예술,
교과 : 미술,
자료수 :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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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는 1577년 독일의 베스트팔렌(Westfalen,오늘날의 노트르라인베스트팔렌 주)이라 불리는 지방의 지겐(Siegen)이라는 도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안트베르펜의 법률가인 장 루벤스(Jan Rubens)와 마리아 피펠린크스(Maria Pypelincks)로, 그의 아버지는 칼뱅주의자였다. 그의 어머니는 알바 백작의 프로테스탄트(개신교)에 대한 박해와 종교적 소란을 피해 1568년 안트베르펜에서 쾰른으로 도망쳤다. 아버지 장 루벤스는 William the Silent의 두 번째 부인이었던 작센의 안나의 연인이자 변호사 및 고문직을 맡고 있었는데, 1570년 그녀의 궁전에서 살게 되었다. 아버지인 장 루벤스가 그녀와의 불륜이 들통나 감옥에 갇히게 된 후 1577년 페테르 파울 루벤스가 태어났다. 루벤스의 가족은 1년 후 쾰른으로 옮기게 되었다. 1589년, 아버지가 죽은 지 2년이 지나고 루벤스는 형과 어머니와 함께 안트베르펜으로 이사했으며 라틴어를 가르치는 가톨릭학교를 다녔다. 종교는 그의 작품세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 그는 가톨릭의 반종교 개혁 형식의 미술 분야의 대표적인 화가들 중 한 명이 되었다. 안트베르펜에서 루벤스는 인문학과 라틴어, 그리고 고전 문학을 배웠다. 14살이 되던 해에 그는 Tobias Verhaeght의 지도 하에 미술 실습생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 후, 그는 도시에서 유명했던 두 명의 매너리즘 화가 아담 반 누트(Adam van Noort)와 오토 반 빈(Otto van Veen)에게서 미술을 지도받았다.[1] 루벤스는 한스 홀베인이나 마르카토니오 레이몬디의 판화, 그리고 라파엘로 등 이전 시대의 거장들의 작품들을 모작하면서 공부했다. 루벤스는 1598년 공부를 마치고 '성 루크 화가조합(Guild of St. Luke)' 에서 조합장 및 교사직을 맡게 된다.[2] 1600년에 루벤스는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의 요람인 이탈리아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그는 베네치아에서 잠시 머무르며 티치아노와 베로니스, 그리고 틴토레토의 작품을 감상했으며, 이후 만토바 공작 빈첸초 1세에게 사랑을 받으며 그의 성이 있는 만토바에 정착했다. 베로니스와 틴토레토의 색감과 구도는 루벤스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며 이후 그의 성숙기의 스타일은 티치아노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3] 빈첸초 공작의 후원을 받으며 1601년 루벤스는 피렌체와 로마를 방문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예술작품과 이탈리아의 거장들의 작품을 모작하며 공부하였다. 헬레니즘 시대의 조각 라오콘과 그의 아들(Laocoon and His Sons)이 특히나 그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그와 함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이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4] 또한 그는 당시 큰 화제가 되고 있었던 매우 자연스럽고 현실적인 작품을 그리는 카라바조의 작풍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그 후 루벤스는 그리스도의 무덤이라는 카라바조의 작품을 모작했으며 그의 후원자인 빈센조 백작에게 동정녀 마리아의 죽음(루브르 박물관)을 구입하라고 추천하기도 했다.[5] 또, 루벤스는 안트베르펜에 있는 도미니칸 교회에서 로자리오의 마돈나(Kunsthistorisches 박물관, 베니스)를 구입하는 것을 돕기도 했다. 로마에서 머물 무렵, 루벤스는 처음으로 그의 세 폭 제단화를 완성했다. 이 작품은 St. Helena with the True Cross로, 로마의 교회 예루살렘의 산타 크로스를 위해 그려졌다. 루벤스는 1603년, 외교 임무를 맡아 스페인으로 여행을 가게 된다. 그는 펠리페 3세에게 보내는 빈센조 백작의 선물을 갖고 있었다. 스페인에 머물며 그는 펠리페 2세가 모았던 수많은 라파엘로와 티티안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6] 루벤스는 또한 마드리드의 프라도에 머물면서 말을 타고 있는 러마의 백작의 초상화를 그리게 되는데, 이 작품은 티티안의 작품 Charles V at Muhlberg (1548년작, 마드리드의 프라도)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으로 보인다. 이 여행은 그가 예술과 외교술의 재능을 함께 발휘했던 첫 번째 여행이었다. 루벤스는 1604년 이탈리아로 돌아왔으며 이후 4년간은 만투아와 로마의 제노바에서 지냈다. 제노바에서 루벤스는 Marchesa Brigida Spinola-Doria(내셔널 미술 전시관, 워싱턴 D.C.) 등 여러 초상화를 그렸다. 이 때의 작품들은 훗날 안토니 반 다이크나 조슈아 레이놀드, 그리고 토마스 게인즈보로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7] 또한 루벤스는 도시의 성들을 삽화 형식으로 그리는 작업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1606년에서 1608년, 그는 로마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사람이 되었으며 이 시기에 그는 당시 도시에 새로 지어진 가장 세련되고 유명했던 발리셀라의 산타 마리아 교회(Santa Maria in Vallicella or, Chiesa Nuova)를 위해 제단화를 그리게 된다. 작품의 주제는 당시에 그 지역에서 가장 칭송받던 성인이었던 교황 그레고리오 1세가 성모 마리아와 그의 아들을 숭배하는 모습을 그리기로 결정된다. 첫 번째 작품은 한 폭만을 사용하여 그린 제단화였으나, 세 폭에 그려진 두 번째 작품으로 교체되었다. 이 두 번째 작품은 "발리셀라의 산타 마리아"의 성스러운 모습을 재현했으며 제거가 가능한 구리 덮개가 곁들여졌고, 중요한 축제일에 대중들에게 공개되었다.[8] 이탈리아에 미친 루벤스의 영향은 굉장히 거대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Pietro Paolo Rubens"라는 서명을 한 편지와 서신을 여러 장 썼다. 편지에서 그는 '이베리아 반도로 돌아가고 싶다'라고 쓰고 있으나, 그의 소망은 실현되지 못했다.[9]

페테르 파울 루벤스 작품 랜선 전시회
페테르 파울 루벤스는 독일 태생으로 17세기 바로크를 대표하는 벨기에 화가이다. 루벤스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그는 역동성, 강한 색감, 그리고 관능미를 추구하는 환상적인 바로크 스타일의 대표적인 화가이기도 했다. 루벤스는 초상화, 풍경화, 신화나 사실을 바탕으로 그린 역사화, 그리고 교회 제단을 위해 그린 반종교개혁적인 세 폭 제단화인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라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루벤스는 유럽 전역의 여러 귀족과 미술품 수집가에게 유명했던 안트베르펜의 화실을 운영했으며, 그는 인문학자이자 미술품 수집가, 스페인의 펠리페 4세와 잉글랜드의 찰스 1세에게 기사 칭호를 부여받은 외교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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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작품수 : 8 개)
삽화 (작품수 : 9 개)
태피스트리 (작품수 : 3 개)


페테르 파울 루벤스는 독일 태생으로 17세기 바로크를 대표하는 벨기에 화가이다. 루벤스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그는 역동성, 강한 색감, 그리고 관능미를 추구하는 환상적인 바로크 스타일의 대표적인 화가이기도 했다. 루벤스는 초상화, 풍경화, 신화나 사실을 바탕으로 그린 역사화, 그리고 교회 제단을 위해 그린 반종교개혁적인 세 폭 제단화인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라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루벤스는 유럽 전역의 여러 귀족과 미술품 수집가에게 유명했던 안트베르펜의 화실을 운영했으며, 그는 인문학자이자 미술품 수집가, 스페인의 펠리페 4세와 잉글랜드의 찰스 1세에게 기사 칭호를 부여받은 외교관이었다.

루벤스는 1577년 독일의 베스트팔렌(오늘날의 노트르라인베스트팔렌 주)이라 불리는 지방의 지겐이라는 도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안트베르펜의 법률가인 장 루벤스와 마리아 피펠린크스로, 그의 아버지는 칼뱅주의자였다. 그의 어머니는 알바 백작의 프로테스탄트(개신교)에 대한 박해와 종교적 소란을 피해 1568년 안트베르펜에서 쾰른으로 도망쳤다. 아버지 장 루벤스는 두 번째 부인이었던 작센의 안나의 연인이자 변호사 및 고문직을 맡고 있었는데, 1570년 그녀의 궁전에서 살게 되었다. 아버지인 장 루벤스가 그녀와의 불륜이 들통나 감옥에 갇히게 된 후 1577년 페테르 파울 루벤스가 태어났다. 루벤스의 가족은 1년 후 쾰른으로 옮기게 되었다. 1589년, 아버지가 죽은 지 2년이 지나고 루벤스는 형과 어머니와 함께 안트베르펜으로 이사했으며 라틴어를 가르치는 가톨릭학교를 다녔다. 종교는 그의 작품세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 그는 가톨릭의 반종교 개혁 형식의 미술 분야의 대표적인 화가들 중 한 명이 되었다. 안트베르펜에서 루벤스는 인문학과 라틴어, 그리고 고전 문학을 배웠다. 14살이 되던 해에 그는 Tobias Verhaeght의 지도 하에 미술 실습생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 후, 그는 도시에서 유명했던 두 명의 매너리즘 화가 아담 반 누트와 오토 반 빈에게서 미술을 지도받았다. 루벤스는 한스 홀베인이나 마르카토니오 레이몬디의 판화, 그리고 라파엘로 등 이전 시대의 거장들의 작품들을 모작하면서 공부했다. 루벤스는 1598년 공부를 마치고 성 루크 화가조합에서 조합장 및 교사직을 맡게 된다. 1600년에 루벤스는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의 요람인 이탈리아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그는 베네치아에서 잠시 머무르며 티치아노와 베로니스, 그리고 틴토레토의 작품을 감상했으며, 이후 만토바 공작 빈첸초 1세에게 사랑을 받으며 그의 성이 있는 만토바에 정착했다. 베로니스와 틴토레토의 색감과 구도는 루벤스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으며 이후 그의 성숙기의 스타일은 티치아노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빈첸초 공작의 후원을 받으며 1601년 루벤스는 피렌체와 로마를 방문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예술작품과 이탈리아의 거장들의 작품을 모작하며 공부하였다. 헬레니즘 시대의 조각 라오콘과 그의 아들이 특히나 그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그와 함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이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또한 그는 당시 큰 화제가 되고 있었던 매우 자연스럽고 현실적인 작품을 그리는 카라바조의 작풍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그 후 루벤스는 그리스도의 무덤이라는 카라바조의 작품을 모작했으며 그의 후원자인 빈센조 백작에게 동정녀 마리아의 죽음(루브르 박물관)을 구입하라고 추천하기도 했다. 또, 루벤스는 안트베르펜에 있는 도미니칸 교회에서 로자리오의 마돈나를 구입하는 것을 돕기도 했다. 로마에서 머물 무렵, 루벤스는 처음으로 그의 세 폭 제단화를 완성했다. 이 작품은 St. Helena with the True Cross로, 로마의 교회 예루살렘의 산타 크로스를 위해 그려졌다. 루벤스는 1603년, 외교 임무를 맡아 스페인으로 여행을 가게 된다. 그는 펠리페 3세에게 보내는 빈센조 백작의 선물을 갖고 있었다. 스페인에 머물며 그는 펠리페 2세가 모았던 수많은 라파엘로와 티티안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6] 루벤스는 또한 마드리드의 프라도에 머물면서 말을 타고 있는 러마의 백작의 초상화를 그리게 되는데, 이 작품은 티티안의 작품 Charles V at Muhlberg (1548년작, 마드리드의 프라도)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으로 보인다. 이 여행은 그가 예술과 외교술의 재능을 함께 발휘했던 첫 번째 여행이었다. 루벤스는 1604년 이탈리아로 돌아왔으며 이후 4년간은 만투아와 로마의 제노바에서 지냈다. 제노바에서 루벤스는 Marchesa Brigida Spinola-Doria(내셔널 미술 전시관, 워싱턴 D.C.) 등 여러 초상화를 그렸다. 이 때의 작품들은 훗날 안토니 반 다이크나 조슈아 레이놀드, 그리고 토마스 게인즈보로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7] 또한 루벤스는 도시의 성들을 삽화 형식으로 그리는 작업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1606년에서 1608년, 그는 로마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사람이 되었으며 이 시기에 그는 당시 도시에 새로 지어진 가장 세련되고 유명했던 발리셀라의 산타 마리아 교회(Santa Maria in Vallicella or, Chiesa Nuova)를 위해 제단화를 그리게 된다. 작품의 주제는 당시에 그 지역에서 가장 칭송받던 성인이었던 교황 그레고리오 1세가 성모 마리아와 그의 아들을 숭배하는 모습을 그리기로 결정된다. 첫 번째 작품은 한 폭만을 사용하여 그린 제단화였으나, 세 폭에 그려진 두 번째 작품으로 교체되었다. 이 두 번째 작품은 \"발리셀라의 산타 마리아\"의 성스러운 모습을 재현했으며 제거가 가능한 구리 덮개가 곁들여졌고, 중요한 축제일에 대중들에게 공개되었다. 이탈리아에 미친 루벤스의 영향은 굉장히 거대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Pietro Paolo Rubens\"라는 서명을 한 편지와 서신을 여러 장 썼다. 편지에서 그는 \'이베리아 반도로 돌아가고 싶다\'라고 쓰고 있으나, 그의 소망은 실현되지 못했다.

[자료제공 - 위키백과(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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